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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건의 개요


의뢰인은 완구 제작 및 공급을 영위하는 업체인 A사의 대표로서, 국내 완구업계 굴지의 기업인 B사와의 사이에 C사가 영상을 제작하는 시즌제 로봇 애니메이션 ‘D 시리즈’에 관해 A사가 D 시리즈 1기에 등장하는 로봇 등 완구제품을 제작하여 공급하고 이를 B사가 유통 및 판매하기로 하는 상품독점거래계약(‘이 사건 계약’)을 체결하면서 초도발주금액을 50억 원 이상으로 정하였습니다.

그런데 위 D 시리즈 1기의 흥행 실패로 관련 로봇 상품의 판매가 부진하여 B사가 막대한 금액 상당의 재고물품을 부담하게 된 상황에서 2기에는 1기 로봇들이 등장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되자, B사는 의뢰인이 D 시리즈와 관련하여 B사 관계자들과 발표 및 회의를 진행했을 당시 D 시리즈의 1기에 등장했던 로봇이 2기에도 계속 등장한다고 B사 관계자들을 기망하여 B사가 이로 인해 착오에 빠져 이 사건 계약을 체결함으로써 의뢰인이 50억 원 이상의 금액을 편취하였다고 주장하면서 의뢰인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사기) 혐의로 고소하였고, 검사는 혐의가 인정된다고 보아 의뢰인을 기소하였습니다.


2. 바른의 주장 및 역할


바른은 1심 공판 단계에서 의뢰인의 변호인으로 선임되고 나서 공판절차에서 ①의뢰인은 ‘D 시리즈’ 1기의 로봇이 2기에도 계속 등장한다는 취지로 B사를 기망하는 말을 한 바가 없고 ②B사 또한 1기 로봇이 2기에도 계속 등장한다고 착오한 바가 없을 뿐만 아니라 1기 로봇의 2기 등장 여부가 이 사건 계약 체결을 좌우하는 중요한 사항도 아니어서 착오와 처분행위 간에 인과관계가 있다고도 볼 수 없으며 ③피고인은 2기에 1기 로봇이 등장하지 않는 것으로 확정된 후에도 1기 로봇이 2기에 출연할 수 있도록 B, C사와 지속적으로 협의를 진행하는 등 피고인에게 편취의 범의가 없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바른은 의뢰인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이 사건 계약서와 D 시리즈 관련 회의 당시 발표자료 및 의뢰인 발언을 중심으로 한 방대한 양의 증거와 관련자들의 진술을 면밀히 검토하고, 의뢰인에게 적대적 태도를 보이는 관련자들에 대한 증인신문에서도 의뢰인에게 유리한 증언을 이끌어 내거나 혹은 의뢰인에게 불리한 증언의 모순점을 찾아냈으며, 논리적인 변론을 통하여 검사 및 B사 주장의 부당성을 지적함으로써 재판부를 설득하였습니다.


3. 판결의 내용


1심 재판부는 바른의 주장을 받아들여 의뢰인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 그 이유로 ①D 시리즈 관련 회의 당시 발표자료의 기재나 의뢰인의 발언을 볼 때 의뢰인이 1기 로봇이 2기에도 계속 등장한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볼 수 없고 ②장기간의 협의를 거쳐 체결된 이 사건 계약서에 1기 로봇의 2기 등장 여부에 관한 규정이 전혀 없고 계약서 내용 외의 구두 합의 등은 효력이 없다는 규정이 있는 점 등을 볼 때 이는 계약 체결을 좌우하는 사항이 아니었고 따라서 B사가 피고인의 발언으로 인해 착오에 빠져 계약을 체결했다고 볼 수도 없으며 ③2기에 1기 로봇이 등장하지 않는다고 사전에 협의된 바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애초에 D 시리즈의 로봇 출연 여부에 대한 결정 권한은 A사나 의뢰인이 아닌 C사에게 있었다고 보이는 점 등을 볼 때 기망행위, 착오 및 처분행위 사이에 인과관계도 인정되지 않고 ④의뢰인이 만약 B사를 기망하려는 의도가 있었다면 1기 상품에 관한 발주 및 대금지급이 완료되기도 전에 B사 측에 2기에는 1기 로봇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통지할 이유가 전혀 없어 의뢰인에게 편취의 범의가 있었다고 보기도 어려운바, 의뢰인의 범죄 혐의가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되었다고 볼 수 없다고 보아 무죄를 선고하였습니다.

위와 같은 1심의 무죄판결에 대해 검사가 항소하였고, 항소심에서 검사는 공소장변경신청을 통해 ‘피고인이 B사에게 1기 로봇의 2기 등장 여부를 고지할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묵비함으로써 부작위에 의한 기망행위를 했다’는 취지의 예비적 공소사실을 추가하였습니다. 그러나 바른은 이러한 예비적 공소사실에 대해서도 ①이 사건 계약서 문언이나 계약체결 전후의 정황을 볼 때 1기 로봇의 2기 등장 여부가 B사에게 계약 체결을 좌우할 정도의 중요한 사항이 아니었고 ②2기에 1기 로봇이 아닌 다른 로봇이 등장하더라도 이 사건 계약에 따른 B사의 법적 지위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으므로 피고인에게 이에 관한 고지의무가 인정될 수 없다는 취지로 변론하였습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1심의 판결이유를 그대로 인용하는 외에, 예비적 공소사실에 관해서도 바른의 변론을 받아들여 무죄로 판단하면서 검사의 항소를 기각하였습니다.


4. 판결의 의의


이 사건에서 법원의 판결은 업계의 지배적 기업이 자신의 경영상 판단에 따라 체결한 사업계약의 실패로 인하여 손해를 본 것을 거래 상대방인 중소기업 및 그 대표에게 전가하고자 기망행위를 주장하며 사기 혐의로 고소하는 행태에 대해 제동을 건 것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또한 관련 증인들이 법정에서 의뢰인에 대하여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는 등 불리한 상황에서도 증거를 면밀히 검토하고 치밀하게 증인신문을 준비하여 재판부를 논리적으로 설득하면 무죄판결을 얻어내는 것이 충분히 가능함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습니다.


□ 담당변호사: 류종명, 이재전 변호사